군대를 전역한 24살의 내가 공부를 시작하면서 마음속에 품어왔던 전주교대에 입학한지 어느덧 2년하고도 6개월이 흘렀다. 적지 않은 나이에 공부를 시작해서 얻었던 합격의 기쁨이란 이루 말로 할 수가 없었다. 군대를 전역하는 날보다 기뻤으니... 이 과제를 하기 전 합격자 통보를 받고 개인 블로그에 올린 글을 읽어 보았다.
20대의 청년이 좋은 옷을 입지 못하고 좋은 차를 가지지 못해서 슬퍼하기보다는
20대의 청년이 더 좋은 선생님이 될 수 없을 거라는 생각에 슬퍼하는
진정한 예비교사가 되겠습니다. (2009.01.23 금 12:10)
그리고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2009년 3월 2일 내가 수험생의 신분이 아닌 전주교육대학교의 학생으로 교문을 처음 넘던 날을. 마음속으로 정말 좋은 교사가 되겠노라고 수천 번을 다짐하며 교문에 들어 왔지만 어느새 그 다짐은 사그라지고 나는 다시 옛날의 나로, 사실 말하면 전과 아주 같지는 않지만,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게 해주었다.
막연한 초등학교 선생님이 아닌 정말 참스승이 되기 위한 지표를 세울 수 있게 도움을 받았던 “한명의 교사가 바로서면 천명의 아이들이 행복합니다. 라는 짧은 이 한마디가 아직도 내 마음속에서 늘 살아있다. 학교를 다니던 3년여의 기간 동안 한 번도 마음속에서 놓지 않았던 이 구절을 앞으로도 쭉 마음속에 새기면서 살아가고 싶다.
<5년 후>
이제는 교생선생님이 아닌 정식 교사가 되어서 학교에 출근을 한다. 아직은 아이들을 대하고 교수하는 데에 서툴러서 가끔은 젊은 혈기에 아이들에게 화도 많이 내겠지만, 아이들과 함께 호흡하면서 함께 뛰고 함께 즐거워하고 함께 슬퍼하는 교사가 되어 있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대학원에 다니며 조금 더 교육에 대하여 연구하고 공부하는 학생의 신분으로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10~15년 후>
아마도 한 가정을 이루고 이제는 어수룩한 신참 교사의 모습을 벗어나 어느 정도 안정된 궤도에 오른 선생님이 되어있을 것이다. 하지만 매일 반복되는 쳇바퀴 같은 일상에서 매너리즘을 느끼게 되는 시기가 올지도 모르겠다. 선생님이 되어서 가장 흔들리는 시기가 올지도 모르겠다. 곡식이 익어가려면 한 여름의 뜨거운 햇빛도 필요하기에 슬기롭게 이겨나가야 한다고, 또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30년 후>
이제 내 나이 쉰아홉……. 이제 곧 퇴임을 바라보는 나이이다. 아마 이쯤이면 어느 학교의 교장선생님이 되어서 수많은 아이들과 후배교사들을 책임지는 위치에 와있을지도 모르겠다. 평교사일 때에는 우리 학급의 아이들만 신경 쓰면 되었지만 지금은 한 학교를 책임져야 하니 어깨에 진 책임감이 무겁다. 하지만 수십 년간 쌓아온 경험으로 ‘아이들이 오고 싶어 하는 학교, 그리고 아이들이 즐거워하는 학교’를 만들기 위해서 고심하고 있는 내 모습을 그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