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당한 이야기이지만 나는 내가 교사가 적성에 맞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교사를 몇 년간 하신 분들도 적성에 맞지 않는다며 교단을 떠나시는 경우도 있는데 말이다. 내가 이렇게 확신한 데에는 나의 친구들이 일조했다. 나는 쉬는 시간마다 ‘또래 교사’의 역할을 했다. 공부를 하다가 모르는 내용이 생겨 내게 질문을 했던 친구들이 나의 대답에 명쾌함을 느낄 때 일종의 쾌감을 느꼈다. “선생님 같다”는 친구들의 말을 들으면서 은연중에 ‘교사가 되면 잘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단순히 교사는 잘 가르치면 된다고 생각했던 셈이다.
초등교사라는 직업에 대해 깊게 생각해본 것은 교대에 입학하고 나서였다. ‘교사는 잘 가르치면 된다.’라는 생각은 상당히 막연했다. 몇 번의 교생실습을 거치고 여러 교과교육론 수업을 수강하면서 교과 내용이 모든 학생들에게 와 닿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는 나에게 교대에서 배우는 내용들이 하찮고 별볼 것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물론 초등 수준의 교육과정이 얼마나 고차원적이겠느냐 만은 수업을 통해 그것들을 학생들과 함께 호흡하며 풀어내기란 말처럼 쉽지는 않다. 실제 현장을 보니 확실히 초등학생들에게 필요한 교사는 중고등학생이었을 때 익숙해져있었던 교사의 모습과는 달라야 했다. 담임교사가 전담 수업을 제외한 모든 교과의 수업을 함께하고 수업 외의 시간에도 교실에 상주하는 초등 교육의 특수성에서부터 그 필요성이 드러난다. 단순히 잘 가르치는 것 외에도 학생들 자체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어야 했다. 그것이 학생과 교사간의 관계를 만들고 학급 전체의 분위기를 형성하며 이를 토대로 만들어진 유대감 속에서 비로소 학습이 일어나는 것이었다. 학생들이 어떤 생각을 하며 사는지, 어떤 활동을 통해 학생들 각자가 가진 장점들을 극대화할 수 있는지 등을 고민하지 않는다면 학생들과의 시간은 무의미하게 흘러갈 것이다. 그렇기에 교사가 끊임없이 학생들을 관찰하고 생각하는 것이 참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교사의 고민이 ‘유의미’하기 위해서는 교사의 끊임없는 공부가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다. 배우지 않고는 가르칠 수 없기 때문이다. 교육의 본질을 꿰뚫는 원리들을 꾸준히 학습하고 실제 아이들을 마주한다면 학생들이 교사인 나에게 배워가는 동시에 나도 학생들로부터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곧 학생들과의 소통이라는 연료로 채워가는 초등교사만의 전문성이지 않을까.
이처럼 나는 학생들과의 소통을 기반으로 ‘가르치면서 동시에 배우는’ 교사가 되고 싶다. 지식을 가르치기에 앞서 수업시간 외에 학생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그들과 감정을 공유하며 안정된 교실 공동체를 만들 것이다. 동시에 교육에 대해 고민하고 이론적인 부분들도 익힐 것이다. 교사와 학생이 소통하며 서로 가르치고 배우는 선순환 속에서 긍정적인 교실이 만들어지고 학생들이 올바르게 자라며 교사인 나또한 성장할 것이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