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후에는 교대를 졸업하고 학생으로서가 아닌 선생님으로서 학생들과 마주서게 된다. 그때 나는 학생들에게 학생들의 말을 잘 들어주는 교사로 기억되고 싶다.
현재 초등학교 2학년 남학생 두 명을 과외하고 있는데, 그들을 가르치는 것에 있어서 가장 어려운 점은 학생들의 말을 들어주는 것이다. 지금은 떠들 시간이 아닌데 떠들고 있고,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나름대로의 논리를 펼치며 그것이 옳지 않다고 말하는데, 터무니없는 것이어서 반박을 하면 자신의 말을 안 들어주는 선생님은 망나니라며 막말을 해버린다. 사실 아직은 어디까지 학생들의 말을 들어줘야 하고 어디까지 교사의 주장을 내세워야 하는지 감이 안 잡힐 때가 많다. 만약 내가 기존의 방식대로 하는 것을 주장 했다가 학생이 교사에 대하여 부정적인 생각을 갖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수업이 어디까지 교사의 의도대로 흘러가야 하는가, 등 많은 고민 때문에 수업 자체도 놓치고 학생의 마음도 상하게 되는 경우가 빈번하였다. 따라서 내가 되고 싶은 학생들의 말을 잘 들어주는 교사란 무조건적으로 학생들이 말하는 내용을 따르는 교사가 아니라 자신이 설계한 수업을 성공하면서도 학생들이 요구하는 내용도 수용하는 교사이다.
학생들의 말을 잘 들어주는 교사가 되기 위하여 나는 첫 5년 동안은 최대한 만나볼 수 있는 다양한 아이들을 만나보도록 할 것이다. 5년 후의 나는 아직은 시행착오를 겪고 있지만 학생들을 우선으로 생각하는 교사가 되도록 할 것이다. 다른 사람이 보더라도 아, 저 사람 많이 노력하고 있게라는 것이 보이도록. 그리고 5년 후면 내가 임용을 경기도록 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면 교사가 된지 대략 2년 정도의 시간이 지난 후이므로 아직 학생들과 함께 반을 만든다는 것이 어색하지만 열심히 노력하는 교사가 될 것이다. 10년 후의 나는 7년차 교사로 내가 만나 볼 수 많은 아이들 중에서 일부분만을 만난 상태이겠지만 학생들의 의견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초등학교 고학년 학생들의 경우에는 다양한 형태의 학급 건의함을 만들어서 학생들의 의견이 익명으로 교실에 반영되도록 할 것이다. 이건은 초등학교 고학년에게만 적용하는 이유는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은 아직 건의의 힘이나 익명성에 대하여 잘 인지하지 못하고 그것을 잘못 이용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교사에게 직접 얘기하도록 하는 것이 보다 더 효율적인 해결방안이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익명으로 이것을 적용하는 이유는 아직 몇몇 학생들이 자신의 생각을 여럿 앞에서 공개적으로 발언하는 것에 부담스러워 하는 경우가 있을 것이므로 만약 쓰고 싶다면 자신의 이름을 써도 되지만, 그렇지 않다면 이름을 쓰지 않고 건의해도 되는 형태의 건의함을 만들어서 학생의 말을 들어줄 수 있는 소통기구를 추가할 것이다. 20년 후의 나는 충분한 경험을 통하여 이러한 건의함 외에도 현실적으로 가능하고 특정 학급에 적용할 수 있는 창의적인 소통기구를 생각해 낼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을 적용하여 학생들의 말을 들어줄 수 있는 기관들을 많이 만들어 내고, 현재 내가 맡고 있는 학생들과 같이 자신의 말에 따라 주지 않았다고 교사를 망나니라고 부르는 등의 폭언을 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학생들이 교사의 말이 합당한 것이라고 생각하여 따를 수 있도록 하는 학생들이 이해할 수 있는 논리적인 사고와 적당한 카리스마가 형성되어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것을 통하여 나는 학생들의 말을 잘 들어주면서도 타당하지 않은 것은 걸러내고, 교사가 자신의 의견을 유지하는 부분에서는 그것이 합당한 것이라고 학생들이 생각하도록 하여 수업을 진행할 것이다.
이외에도 내가 직접 현장에 나가서 수정해야겠다고 생각하는 다른 부분들이 있겠지만, 현재 나는 미래의 내가 학생들의 말을 잘 들어주는 좋은 교사가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