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교대에 입학했을 때는 교사가 꿈이 아니었다. 많은 이들이 그랬듯이. 1학년, 2학년을 지난 순간까지도 확실하게 교사가 너무나도 되고 싶다고 당당히 말하기가 힘들었다. 그러나 많은 교수님들의 가르침 덕분인지, 교대의 분위기 덕분인지, 내가 앞으로 안고 가야 할 아이들에 대한 책임감을 점차 크게 갖게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막연하게 나의 이 애매모호한 마음이 훗날 아이들에게 상처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막연하게 좋은 교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 1년 2년 학교를 다녔던 것 같다. 내가 교사에 대한 마음을 확실히 정하게 된 것은 3학년을 겪으면서이다.
나는 그동안 교사가 아이들을 훌륭하게 가르쳐서 사회에서 잘 지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교육자라고 생각했다. 우리가 배웠던 시절의 학교에서는 공부를 열심히 해야 성공할 수 있다는 생각이 만연했다. 따라서 선생님의 말씀에 따라 공부하는 게 맞았고 어느 순간 교사가 된 나조차 아이들은 당연히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수업시간에 교사는 수업을 하고 아이들은 수업을 들어야 하는, 내가 겪어왔던 교실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이다.
내가 3학년에 올라와서 만난 몇 분의 교수님들이 내 생각을 크게 바꿔주었다. 국어 교수님의 질의토론식 수업, 사회 교수님의 거꾸로 수업, 도덕 교수님의 발표토론 수업 등등 강의식 수업이 아닌 수업들이 훨씬 유익하고 재미있으며 배우는 것도 많다는 생각을 했다. 국어 교수님과 아이들의 장래희망에 대해 이야기 한 적이 있다. 교사가 자기 앞가림도 못하는데 어떻게 아이들에게 성공할 직업을 제시해줄 수 있느냐고. 앞으로 사장될 직업들과 새로 생겨나는 다양하고 창의적인 직업들을 교사가 다 알고 제시해 줄 수 있냐는 것이다. 교사 1인의 판단으로 많은 아이들의 꿈에 잣대를 들이대서는 안 된다는 그 말이 거대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이제 나는 아이들이 왜 공부를 해야 해요? 라는 질문에 대답해줄 수 없게 되었다. 수학을 잘 하지 못해도 성공하는 사람들이 있다. 역사에 대한 지식이 없어도 삶을 살아가는 데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앞으로의 사회에서 지금까지와 다르게 성공할 수 있는 분야는 더 많아지고 아이들은 내가 겪어온 것보다 더 다양한 경험을 하며 살아갈 것이다.
그렇다면 교사의 역할은 무엇일까. 나는 교사가 아이들의 가능성을 찾도록 도와주는 역할만 해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의 결과물을 평가하기 보다는 과정을 함께하는 교사가 되고 싶다. 아이들이 교사의 수업을 듣고만 있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충분히 탐구하고 생각을 넓힐 수 있도록 발판을 마련해주는 교사. 현재 나의 교사상은 그렇다. 앞으로 어떻게 변해갈지 모르겠지만 지금 당장의 나는 아이들을 판단하지 않고 함께하는 교사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