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에 대해 쓰기 전에 ‘나’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 전주교육대학교 3학년 과정을 듣고 있는 현 시점에서, 나는 부모님에게 자랑스러운 교대 생 딸, 내 고등학교 친구들에게 초등 교사 준비 중인 친구, 나와 상관 없는 다른 사람들 눈에 예비 초등 교사로 여겨질 것이다. 그럼 내가 나를 평가할 때 나를 무엇이라 정의할 수 있을 까? 나의 정체성과 가치관을 뚜렷이 세우고 내적으로 한층 더 성장했으면 하길 바라는 마음가짐으로 이번 과제에 임하기로 했다.
왜 초등 교사가 되고 싶으냐? 라는 질문을 받는 다면 아이들을 사랑하고 그 중에서 가르치는 일이 제 성향과 가장 적합해서요. 라는 진부한 답변을 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물론 아이들을 사랑하고 가르치는 일이 가장 자신 있다면 초등교사가 가장 적합할 것이고 이 대답이 논란이 되거나 잘못된 것이 아니다. 문제가 되는 것은 이 대답의 적절함 여부가 아니다. 이 대답을 하는 나의 마음가짐이 문제제기의 대상이 되어야 할 것이다. 과연 나의 대답이 진심, 즉 자율적 의지에서 우러나온 것이냐 아니면 교대에 다니면서 나를 둘러싼 보든 것들에 의한 타율적 의지에서 강압되어 나온 것이냐 묻는 다면 아직까지 확신에 찰 대답을 할 자신이 없다. 나는 가르치는 일을 제일 좋아하고 또 자신 있어 한다. 중학교, 고등학교 항상 각 과목 멘토를 나서서 맡았고, 발표학습이나 멘토링을 할 때 선생님들로부터 가르치는 일에 소질이 있다는 말을 여러 번 듣기도 했다. 그래서 그런지 중학교 때부터 직업 란 작성하는 곳에 항상 교사라는 단어가 적혀 있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어떤 교사가 되고 싶은 지에 대한 뚜렷한 비전 같은 것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순간 순간마다 꽂히는 과목에 따라 영어 선생님, 역사 선생님, 수학 선생님 매번 달랐다. 그래서 수능 끝나고 원서를 써야 할 시즌 때, 교육대학교를 써야겠다고 정해두지 않았었다. 부모님께서 안정적인 직업으로 초등교사가 괜찮지 않느냐라는 권유를 하셨고, 마침 성적도 안정적으로 교대에 입학할 수 있어서 특별한 사명의식 없이 교육대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돌이켜 보면 대학교 1,2학년은 정말 별 생각 없이 살았던 것 같다. 교대 특성상 자신이 수업을 선택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고 짜여진 수업 시간표대로 생활하는 것이기 때문에 수업마다 특별한 애정 같은 것도 없었다. 물론 일주일 간 초등학교 실습이 있었기 했지만, 직업에 대한 가치관과 소명의식을 다지기에는 철없이 부족한 시간이었다. 내가 초등 교사에 대해서, 미래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 보던 때는 겨울방학이었다. 본가에 올라와 일반대학교 원하는 과를 다니고 있는 친구들, 재수를 선택했던 친구들 등 전주에 있으면서 자주 보지 못했던 학창시절 친구들을 만나러 다녔다.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서 즐거웠지만, 그 친구들과 수다 떨고 집에 오는 길에는 항상 우울했고 괴리감이 느껴졌다. 일반대학교에 자기가 원하는 과에 입학해서 다니고 있는 친구들은 작게나마 뚜렷한 계획 같은 것이 있었다. 영상학과를 간 친구는 자기만의 컨텐츠로 동영상을 제작해 공모전에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고, 승무원을 준비하는 친구는 방학 때 해외에 나가 진로 관련 캠프를 간다고 했다. 글로벌 경영학과에 간 친구 또한 겨울 방학에 중국에 강연을 들으러 간다고 했다. 한의사를 꿈꾸던, 재수를 선택한 내 친구 또한 한의대에 붙어 대학 준비를 하고 있었다. 친구들이 나에게 너는 뭐할 계획이야? 라고 물었을 때,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스스로에게 창피했다. 나는 초등교사가 되기 위해서 지금 무엇을 하고 있지? 아니 그 전에 초등교사가 왜 되고 싶은지 한번이라도 생각해 본적 있나? 겨울 방학 내내 끊임없이 자문하면서 자아 성찰의 시간을 가졌다. 모교 초등학교에 방문해보고 초등 교육 봉사를 다녀보고, 유명한 교육학 책인 에밀을 사서 읽어 보기도 했다. ‘초등 교사’라는 직업에 대해 의식적으로 가까이 하려는 여러 노력 끝에 초등 교사의 직업에 책임의식을 갖게 되기는 했지만 부족했다.
비록 아직 구체적인 사명의식이나 교사관이 세워진 것은 아니지만 초등교사 직업을 평생 직업으로 받아들일 자세를 갖게 될 수 있었다. 누구는 결국 현실에 체념한 것 아니냐 라고 물을 수 있을 것이지만 초등 교사를 평생 직업으로 받아들이겠다는 각오는 절대로 현실에 타협한 결과가 아님은 자신한다. 성장기에 있는 아이들이 바르게, 행복하게 그들의 유년시절을 보낼 수 있도록 주변의 여러 부조리들과 맞설 각오가 되어 있다는 뜻이다. 교대에 입학하고 나서 다른 친구들은 차별화된 점이 있다면 교육을 보는 시야가 생겼다는 점이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나라에서 시행하고 있는 교육에 문제점이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지만, 문제점들이 정확히 무엇인지 잘 모르고 무엇보다 해결해야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지 못한다. 그러나 공교육을 불신한 채 사교육에만 열광하고, 새벽 2~3시까지 독서실에서 피곤에 찌든 채 하루 하루를 보내는 대부분의 한국의 학생들, 자기 발전의 목적이 아닌 오로지 생기부에 쓸 내용을 추가하기 위해서 하는 여러 교내외 활동 등 모든 것이 비정상이다. 혹자는 대한민국 산업 구조상 경제 성장을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체념해야 하는 결과라고 말한다. 이 부분에서 아직까지 적극적으로 반박을 할 수 없겠지만 초등학교 때부터 경쟁 위주 교육에 물들이는 것에는 결사반대한다. 여름방학 때, 유명한 모 학습지 홍보 알바를 한 경험이 있다. 그 학습지는 나 또한 초등학교 때 한 적이 있었다. 알바를 하면서 생각보다 놀랐던 것은 학부모들이 자신의 아이들이 기존의 교육과정을 뛰어넘길 강렬히 원한다는 점이었다. 어머니들 이야기를 들으면서, ‘굳이 그렇게 까지 안해도 잘 커요’ 라는 말을 얼마나 입 밖에 내고 싶었는지 모른다. 어떠한 일이든 자연의 본성을 거스르려고 하면 망치게 된다. 본인의지가 아닌 타인에 압박에 학습을 하는 것은 학습의 효율을 저하시키고 자신과 학습을 분리시키려는 반감만 키우게 된다.
잠깐, 내가 좋아하는 사상가를 소개해 보겠다. 방학 때 에밀이라는 책을 정독했었다. 에밀은 루소의 교육관이 반영된 교육 지침서로 미래의 초등교사가 될 나에게 바람직한 교육에 관한 방향을 제시해 주었다.
현대의 교육에 관해서 많은 문제점들이 제시되고 있다. 획일화된 수업, 입시 경쟁 위주의 교육, 공교육 신뢰 붕괴 등 교육이 지향하는 본 목적과 어긋나게 한국의 교육은 흘러가고 있다. 이러한 교육장 속에서 아이들은 능동적 주체로서 배움의 자격을 얻지 못하고 교육의 수동적인 존재로 취급된다. 거기에 더불어 교권 침해, 학교 폭력 등 인간성 타락 문제까지 더해지면서, 많은 교육 전문가들이 타락한 교육을 바로잡을 방책으로 루소의 교육관을 내세우고 있다. 루소 또한 부패한 사회 제도 속에서 현실을 바로잡고자 그의 사상에 기저를 이루는 자연주의를 내세워 그의 이론을 펼쳤다. 그는 근본이념과 모든 사상의 출발점으로 자연인을 전면적으로 실행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그는 자연의 질서 속에서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남을 수 있기 때문에 교육의 목적을 자연의 질서에 순응하는 것이라 주장했다. 이러한 자연의 질서에 맞게 아이들을 성장시키기 위해서, 교사의 권리를 내세우기 보다 아동의 자율권을 최대한 보장하는 소극적인 교육법을 제시한다. 오늘날 우리 또한, 주입식 획일식 교육으로 획득한 지식보다 아이들이 스스로 터득해서 얻는 지식이 더 유용성이 있고 가치 있음을 알고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실제적으로 교육의 현장에서 이는 제대로 실현되지 못하는 상태이다. 루소의 주장은 이론적으로 매우 바람직하고 좋은 교육임에는 틀림없으나 현실적으로 적용하기에는 다소 이상적이라는 한계점이 있다. 루소 또한 스스로 자식에 대한 아버지로서의 의무를 강조하고, 부모 곁을 떠나 기숙사나 수도원에서 교육 받는 아이들은 바깥세상의 나쁜 습관에 빠지게 된다고 경고하였지만 현실 상 그는 그의 자녀들을 고아원에 보내 모순된 모습을 보여주었다. 현대에 와서 루소의 교육 방법을 실현하고 있는 서머힐 학교가 주목받고 있다. 이 학교는 성선설에 입각한 아동관을 바탕으로 아동의 자유로운 활동을 보장하고 풍부한 아동을 육성할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교육 개혁의 노력으로, 획일적인 교과 과정에서 벗어나 수준 별 이동 수업, 자유로운 토론식 수업 진행 등 아동이 자신의 소질에 맞게 학습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서머힐 학교 운영 방침을 우리나라 교육에 적용 시키자는 주장에는 찬반 입장이 대립하고 있는 상황이다.
루소의 기본적인 교육관이 바람직한 교육을 시행하는 데 좋은 방향을 제시해 주는 것은 분명하다. 나는 초등학교 아이들에게만큼 현대의 서머힐 학교 같은 운영 방침으로 아이들을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선 서머힐 학교는 루소의 주장처럼 아동의 자율권을 우선 보장하는 교육을 강조한다. 아동이 자신의 자율권을 온전히 인정받을 때, 교육의 효율성은 극대화 된다. 아직 완전한 이성이 갖추어진 어린이들에게 아무것도 시키지 않고 그저 건강하게만 기를 수 있다면 그들은 아무런 편견이나 습관을 가지지 않을 것이다. 어른이 권위를 무기로 아이들에게 이해할 수 없는 의무를 강요할 때, 아이들은 어른들이 행사한 권위에 반감을 품고 기피하게 된다. 설령 어른들 앞에서 도리를 이해한 척 태도를 보일지라도, 스스로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행동의 지속성이 떨어진다. 발달된 감각기관으로 아이들 스스로 자연을 느끼고, 배워야 할 것이다. 자연의 힘은 위대하기 때문에 아이들은 타인에게 비자발적으로 입력된 학습 내용들을 거스를 수 있어도 자연이 가르쳐준 내용들은 거스를 수 없다. 따라서 진정한 행복을 느끼게 하고 학습적 효율 측면에서 긍정적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서 서머힐 학교 수업 형태를 따라 가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일부에서는 서머힐 학교 교육을 시행하면 교사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질것이라 우려한다. 그러나 소극적 교육이야 말로, 공교육을 정상화하고 피폐해진 현대의 교육을 개선할 방책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교육이 교육의 본질을 잃어 버린 채 획일적, 경쟁 위주 교육, 교권 침해등의 각 종 비정상적인 모습을 보여 온 것은 아마 교사의 권리를 너무 강조한 결과였다고 생각한다. 본인의 자율권을 충분히 펼치지 못하고 외부로부터 여러 모든 말들을 요구받아 왔던 아이들에게 좋은 교육의 발휘는 어렵다.
내가 존경하는 루소, 그의 교육관이 바람직한 교육과정으로 나아가는 데 좋은 방향을 제시해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마다 개성이 다르고 받아들이는 정도가 다르기 때문에 루소의 교육 방법대로 시행하려면 많은 시간이 소요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을 단순한 시간 낭비라 생각하지 않고 좋은 교육을 시행하기 위한 투자로 여긴다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현대의 교육 부조리들과 모순들을 해결해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현재 내 교육관은 자연주의 교육을 모토로 하고 있다. 주어진 자연 본성대로 아이들이 자신의 개성과 잠재성을 마음 껏 펼칠 수 있도록 내버려 두자는 것이다. 초등학교 아이들은 아직 이성이 잠자고 있는 시기이다. 이들이 가장 사용을 많이 하는 것은 이성이 아니라 감각기관이다. 따라서 식물의 사진을 보여주고 그것을 암기해 시험을 치루는 것보다 그들이 직접 자연에 뛰어 나가 식물에 대해서 스스로 궁금증을 품고 그 식물에 대해 좀 더 알아 보려는 태도를 가지게끔 만들자. 아이들은 판단력이 없기 때문에 진정한 기억력이 없다. 그들 머릿 속에 진정으로 남는 것은 관념이 아닌 소리와 형태의 감각이다. 초등학교에서는 따라서 교실 안에 아이들을 묶어 놓으려 하기 보다 외부로의 체험 활동의 비중을 높여야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안전 교육이라는 명목으로 학교에서는 다양한 외부 활동을 승인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안전에만 치중하다가 오히려 그 틀에 갇혀 더 가치 있는 것들을 놓쳐 버릴 수 있다. 좋은 교육을 실현시키기 위해서, 즉 교육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 무엇이 우선순위인가를 신중히 고려할 필요가 있다.
나에게는 아직 1년 반의 대학생활이 남아 있고, 내 교사관과 비전을 확고히 세우는 데 많으면 많았지 전혀 부족하지 않은 시간이다. 앞으로 나는 내 진로를 위해 그리고 내 삶을 위해 다양한 활동을 하고 독서를 하는 등 질적 투자를 늘릴 예정이다.
미래의 내가 만나게 될 아이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기 위해서 스스로 부끄럽지 않게 자기계발을 할 것이다.
나는 아이들과 소통하고자 하는 교사가 될 것이다. 이때의 소통은 단순한 의미를 넘어선 구체적 의미에서의 소통이다. 표면적으로 소통으로 자만하지 않고 항상 자신을 성찰하며 어떻게 하면 깊고 고차원의 소통을 이룰 수 있을지 항상 고민할 것이다.
또한 나는 조금 더 쉬운 일, 조금 더 편한 일만을 찾으며 도전하지 않는 교사는 절대 되지 않을 것이다. 힘든 일도 마다않고 매사에 진지하게 임하는 교사가 될 것이다. 이것저것 따지고, 재는 교사가 아니라 물불가리지 않는 교사가 될 것이다.
더불어 항상 도전하는 자세로 열정 있는 교사가 될 것이다. 늘 그래왔던 일같이 정형화된 일만을 쫓지 않고 새로운 일, 어렵지만 그만큼 보람 있는 일을 쫓는 교사가 될 것입니다. 물불가리지 않고 계속 도전하는 교사가 될 것이다. 3차혁명, 4차 혁명 등 기술의 진보를 따라가지 못하고 옛 것 만 고수하는 사람들이 시대에 도태되듯 교사 또한 새로운 교수법을 강구하고 ICT교육, 창의력 교육등 적극 활용할 줄 아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따라서 이번 3학년 때에는 위에서 목표한 바 에 맞추어 컴퓨터 교육과라는 심화 전공을 잘 활용해 컴퓨터 능력을 집중적으로 배우고 관련 자격증 시험 공부도 하고자 한다.
더 중요한 것은 내면의 도덕성을 함양하기 위해 나눔의 정신을 일상생활에 실현시키도록 행동할 것이다. 루소의 정신을 따르자면, 이성이 발달이 덜 된 아이들에게 국어 영어 수학 과학 등의 교과 지식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아이들의 순수한 자연적 본성이 훼손 되지 않게끔 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일 것이다. 따라서 나는 내 학급 아이들에게 교과지식보다는 나눔의 가치와 원대함을 일깨우기 위해서 노력할 것이고 지도자로서 나눔의 실천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흔히 사람들은 나눔이라는 말을 들으면 기부라는 단어를 가장 많이 연상할 것이고 따라서 경제적인 여유 없이 나눔은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눔이라는 말의 사전적 정의에는 음식 따위를 함께 갈라 먹다, 말이나 이야기, 인사 따위를 주고받다, 즐거움이나 고통 고생 따위를 함께하다 등이 포함되어 있다, 즉 맛있는 음식을 이웃과 함께 나누어 먹는 것, 서로의 안부를 묻는 것 등의 원초적이고 지극히 일상적인 행위에서 또한 우리는 나눔의 의미를 실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숨을 쉬는 것이 자연스럽고 쉬운 행위 이듯, 마찬가지로 나눔의 행위도 사람들이 실제로 생각하는 것보다 자연스럽고 쉬울 수 있다. 사실 사람들이 나눔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는 것은 나눔의 행위를 실제로 실천해 보지 않아서 비롯된 것이다. 나눔이라는 개념에 대해 중요성은 인식하지만 일상생활에서 실천할 수 있는 소소한 나눔을 쉽게 경험해 보지 않았기 때문에 나눔이라는 것은 특정 경제력 있는 소수가 하는 기부행위라고 거창하게 결론을 짓는 것이다. 따라서 나눔에서 가장 핵심적인 요소는 실천이다. 실천하지 않으면 나눔 또한 일어 날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은 혼자서도 살 수 있는 독립적인 존재가 아닌 공동체에서 서로 상호작용을 하며 향유하는 존재이다. 따라서 이러한 사회 속에서 나눔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으며, 그러므로 우리 삶속에서 꾸준히 함께 동행되어야 한다.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도움이 필요해지는 순간들이 나타나고 반대로 누군가에게 도움을 베풀 수 있는 여유가 생기는 순간들도 있다. 따라서 도움의 수혜자와 기부자 사이 연대는 사회 내에서 끊임없이 이루어지는 과정이고 선택적인 것이 아니라 당위성을 띠고 그 대상도 가변적이다. 또한 나눔은 기부자의 일방적인 물질적 정신적 조달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테레사 수녀는 ‘나눔의 진짜 이름은 행복’이라고 말한다. 나눔의 전달자는 나눔이라는 실천 행위를 통해 행복, 만족, 뿌듯함 등 금전적으로 살 수 없는 그 이상의 정신적 보상을 얻기 때문에 나눔의 수혜자와의 관계 속에서 더 큰 소득을 얻을 수 있다.
이상으로 약간은 두서 없지만 진솔 했던 내 비전을 작성해 보았다. 훗날 이 과제를 다시 보게 될 때, 적혀 있던 내용을 보고 스스로 떳떳할 수 있었으면 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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