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성 차별적인 인식을 지닌 선생님이 되고 싶지 않다. 하나 더, 복도에 뛰면 안되고 교실 안에선 떠들면 안된다는 판넬을 여기저기 붙여 놓는 선생님이 되고 싶지 않다. 아이들은 아이들 답게 행동하고 있을 뿐인데 그것을 제어하고 원하는 모습으로 보석을 이리저리 가공하는 듯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 차별적인 인식이 있었던 나는 아직 내가 완전히 고쳐지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마찬가지로 아직 합당한 이유를 조리있게 설명하는 모습에도 많은 부족함이있다고 느낀다. 대학에 와서 특히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혼자 생활하면서 아직 나에게 부족한 면이 많다는 것을 느낀다. 교실 내에서 선생님의 가치관과 이념은 어떠한 방법으로도 들어날 수 밖에 없다고 믿는 나는 내 스스로를 차별적인 인식이 없는 사람으로 가꾸어야 한다고 매번 생각하고 노력한다. 좋은 어른이 되는것과 좋은 선생님이 되는 것은 별로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럼 이제 그것과 관련된 이야기를 해 보겠다.
내가 성 차별적인 인식을 지니고 있는 사람이구나를 깨달은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JTBC라는 방송국에서 ‘비정상회담’이라는 프로그램을 반영했는데, 그 프로그램은 단순히 여러 나라 사람들을 모아 놓고 이 나라 저 나라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 뿐만 아니라 취업, 결혼, 정치 등 여러 분야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공유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여기서 한 대기업 면접 질문이었다고 하면서 ‘아버지가 의사인 아이가 사고를 당해서 병원에 실려왔다. 실려온 아이를 본 의사가 “내 아들이잖아!” 라고 소리쳤다고 하는데, 아버지는 그날 휴무로 병원에 출근하지 않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가?’ 라는 질문이 있었다고 한다. 나는 이 질문에 쉽사리 대답하지 못하였다. 하지만 그 프로그램에 출연한 여러 사람들이 너무나도 당연한 표정으로 “그 의사가 어머니니까요” 라고 답하는 것을 보면서 내가 남녀평등이 당연하다는 것을 주장하면서도 실재로는 평등한 인식을 지니고 있지 못 하였구나를 알게 되었다. 이것이 나에게 내가 성 차별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구나를 알려준 충격적인 사건이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매우 활동적인 성향을 지녔다. 이 때문에 할머니와 부모님께 많은 제지를 당하곤 하였는데,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여자애가 저래서 어떡하지" 와 "쟤는 여성스러운 면이 정말 없다" 였다. 궁금한 것이 있으면 직접 보아야 하고 만져보아야 하는 성격 때문에 위험한 사고도 여럿 겪은 것을 보면 어쩌면 부모님이 나에게 한 제지는 당연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렸을 때의 기억을 떠올려 보면, 내가 무언가를 궁금해 하거나 재미있어 할 때에 주변 어른들은 그것에 대해 '왜 위험한가', '왜 하면 안 되는가'를 설명해 주는 것 대신에 성의 없는 문장들, 예를 들면 '안돼!' 와 '하지마' 등으로 그 자리를 채워 넣으시곤 했다. 또한 "여자애가"로 시작하는 문장들로 나를 제지함으러써 어느새 부터인가 나는 더 이상 '위험한' 행동을 하지 않았고, 새로운 것에 대한 궁금증이 미친듯이 발휘되어 어떠한 것에 이끌리지 않았으며, 은연중에 성 차별적인 인식이 나를 지배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여기서 부터 배울 수 있는 점은 두가지다. 핵심을 말하자면 아이들의 행동을 제지할 때에는 항상 합당한 이유를 제시해 주어야 하며 아이들에게 설명을 해주어야 하는것, 두번째는 아이들이 여자라는 이유로, 남자라는 이유로 행동들을 제지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특히 교사가 아이들을 규제하는데에 있어서 성별이 이유가 된다면 정말 근거없는 이유로 아이들을 규제하는 것이 될 것이다.
얼마 전 국어시간의 과제로 동화책을 비평하고 시사하는 바를 적는 보고서를 쓴적이 있다. 그 책의 이름은 "왜요?"라는 책이며 내용은 아이가 아빠에게 자신의 행동을 해야하는 이유를 계속해서 질문하는 책이었고 그 책 등장인물로서는 유일한 어른이었던 아빠는 아이의 계속된 질문에 아이에게 짜증을 내기도, 지쳐 제대로 답을 해주지 않기도 한다. '그냥 그런것'이라며 질문을 무마해 버린다. 이 책은 어른들에게 성찰의 시간을 가지라고 말하고 있다. 우리는 과연 어린 아이들의 질문에 성실히 답하고 있는가. '좀 그런줄 알아'나 '하지마, 그거 아니야' 등의 단편일률적인 말로 아이들을 규제하려고 하지는 않는가. 교실안으로 적용해 보자. 수업시간이든 수업시간이 아니든 우리는 정당한 이유로 아이들에게 '하지 말아야 하는 행동'을 정의 하고 있는가? 교사 스스로 자문자답 해 볼 필요가 있다. 교복을 제대로 챙겨입으라는 말을 하기 전에 왜 그래야 하는지 이유를 설명 할 수 있는 교사만이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자격이 가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