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이라는 말은 여러 의미를 담고 있다. 나는 그것을 시각과 이상이라고 생각한다. 쉽게 말해서 삶을 보는 관점과 삶 속의 목표와 방향성 그 자체이다. 개개인의 인간은 태어나 살고 이후에 죽는다. 이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타인과 관계를 맺을 수 밖에 없으며, 그 과정에서 개인은 성장하기도 하고, 아픔과 행복을 겪기도 하며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기도 긍정적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교사는 학생에게 큰 영향력을 미치는 가까운 관계의 사람이기 때문에 학생에게 긍정적 영향을 미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교사는 학생을 존중해야 한다. 사람을 존중하는 태도는 그 사람을 하나의 인격체로 여겼을 때 가능하다. 교사는 학생을 나보다 못 하거나 떨어지는 존재라기 보다는 단지, 성장하고 있는 나이가 어린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하나의 인격체라고 생각해야 한다. 잘못된 행동을 하는 학생들도 낙인을 내리거나 무시할 것이 아니라,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아이라고 인식하고 학생을 대해야 한다. 특정 과목의 학습을 잘 따라오지 못하는 학생들도 '재는 머리가 나쁜 애' 로 각인하고 무시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런 학생들을 위해 내가 존재한다고 생각하고 학생들을 대해야 한다. 집안 형편이 넉넉해 사교육 시장에서 이미 선행학습을 받으며 자신에게 관심을 줄 사람이 많은 아이와 공교육 현장인 학교에서만 공부든 생활태도든 배울 수 있고 자신에게 관심을 줄 사람이 적은 아이에게 학교 현장의 교사의 의미는 다르게 다가올 수 있다. 그렇다고 선자를 무시하자는 것은 아니며, 선자에 비해 후자를 떨어지는 아이로 인식 하자는 것도 아니다. 한 교실에 있는 각기 다른 장점이 있는 존중해야 하는 인격체로 인식하자는 것이다. 타인이 자신을 존중한다는 느낌을 받으면 개인은 그 타인을 신뢰하고, 둘은 좋은 관계로 발전 할 수 있다. 이는 학생과 교사간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학생이 교사를 신뢰하고 관계가 좋다면 특히 초등학교 학생들은 학교가기를 좋아할 가능성이 더욱 커질 것이며, 이는 수업에서의 적극적인 참여로 이어지고 이것은 또 학습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하지만 교사는 단지 학교 내에서만 학생에게 영향력을 발휘하는 존재가 아니다. 초등학교 안에서의 생활과 밖에서의 생활 모두에 영향을 미칠 것이며, 길게 보면 인생에도 영향을 미친다. 교사가 학생을 대할 때 학생이 이런 사람으로 성장하면 더 좋겠다는 방향성을 가지고 있어야 학생에게 더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교사로서 나의 방향성과 목표를 생각해 보면, 나를 스쳐지나가는 학생들이 생을 살면서 스스로 행복하다고 나름의 만족을 느끼며, 타인에게도 선한 영향력을 주는 사람으로 성장했으면 좋겠다. 다른 사람의 경제적이거나 사회적인 기준으로 어떤 형태의 만족스러운 삶을 살든 스스로가 자신을 불행하다고 생각한다면, 불행한 것이고, 타인이 세워놓은 기준에 도달하지 않더라도 나름의 만족하는 삶을 살면 스스로가 행복하고 현실에 좌절하는 것이 아니라 삶을 사는 원동력이 된다. 타인이 정해준 행복할 수 있는 요소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그것을 스스로 세울 수 있는 학생이라면, 생이 더 다채롭고 풍요로워질 것이다. 이것이 가능하기 위해선, 교사는 '공부를 잘 해야 돼, 대학을 가서 좋은 직장을 얻어야 돼' 라고 말할 것이 아니라, '네가 좋아하는 것이 뭔지 생각해 봐야 해, 무엇을 할 때 행복하고 무엇을 할 때 기쁜지 스스로 알고 이것을 차곡차곡 쌓아야 해' 이렇게 말해야 한다. 이 말은 학생들이 오해할 수 있는 소지도 있다. 가령 '나는 누군가에게 해를 끼치고 누군가를 괴롭힐 때 행복하다' 이런 방식의 사고를 하는 학생들도 있을 수 있기 때문에, 교사는 너의 행복만 추구할 것이 아니라 너 스스로는 행복해야 하지만, 그것이 다른 사람의 불행을 가져와서는 안된다라는 것을 학생이 명확히 인지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 이것은 교사가 학생을 존중하는 태도와 연관지을 수 있는데, 학생들 사이에서도 타인들을 하나의 인격체라고 생각하며 나의 행복과 인생이 중요한 것 처럼 타인의 행복과 인생도 중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해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