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다닌 고등학교는 국어 선생님들이 서평을 좋아하셔서, 1학년 때부터 3학년 때까지 모든 국어 수행평가에 서평 쓰기가 있었다. 그 중 다른 의미로 잘했다는 이상한 칭찬을 받아 기억에 남은 서평이 있었다. ‘트래버’를 읽고 쓴 서평이었다.
트래버는 한 아이가 3명의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그 3명이 각각 3명에게 도움을 주고, 또 그 9명이 각각 3명에게 도움을 주는 형식으로 선행이 이루어진다는 내용이다. 이 책을 읽었을 때의 나는 순자와 가장 친한 친구가 될 수 있을 정도로 성악설을 지지하고 있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사람은 자신이 도움을 받았어도 절대 다른 사람을 아무 대가 없이 돕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자신이 먼저 사람을 돕는다면 언젠가 모든 사람이 선행을 베푸는 세상이 올 거라고 생각한 트래버가 틀렸다고 생각했다. 트래버의 영향으로 유명해진 선행이 유행일 뿐 곧 잊혀지고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인지 당시의 서평에는 트래버의 행동에 아무 감흥이 없었으며 트래버는 어리석은 사람이라는 평가가 쓰여 있었다.
교육대학교에 처음 입학했을 당시의 나는 여전히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악한 본성을 타고 난다고 생각했다. 교실에서 일어나는 다툼, 사고, 학교 폭력 등의 일화를 듣고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는 수업 과정을 통해 이 생각은 더욱 굳건해졌고, 학교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을 교사로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끊임없이 시뮬레이션을 진행하고 또 진행했다. 학생들은 교사로서 가르쳐야 할 존재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무서운 존재이기도 했다.
그러나 첫 실습을 간 후 내 생각은 모두 바뀌었다. 2학년 교실로 실습을 간 나는 학생들의 말과 행동을 보며 매우 놀랐다. 수업 시간 중 한 시간은 한 명씩 나가서 특기를 소개하는 발표 시간이었다. 이때 학생들은 앞에 나가서 말을 잘하지 못하거나 긴장하는 학생을 비난하지 않았다. “힘내!”, “할 수 있어!”, “잠깐 긴장했나 봐. 차례를 바꿔서 한 명이 발표를 더 한 다음에 해볼래?” 등 모든 학생이 앞에 나간 학생을 응원하고 격려했다. 항상 문제가 있을 때 남 탓을 하기 바빴던 어른들의 모습이 아니었다. 모든 일상에서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무한한 애정을 보내는 아이들과 함께한 일주일은 지금까지 가졌던 생각을 송두리째 무너뜨렸고, 일주일 동안은 나도 무한한 사랑 속에서 행복하게 보낼 수 있었다. 짧았던 실습이 끝나고 아이들이 손에 쥐어준 찰흙 선물과 편지를 읽으며 나는 대학에 입학한 이후로 가장 많이 울었고, 그 이후 내 삶의 목표는 변했다.
나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고 싶다. 어리석지 않은 사람들이 비웃더라도 다른 사람을 의심하는 마음보다 돕고 싶어하는 마음이 큰 어리석은 사람이 되고 싶다. 내 머릿속의 의심을 모두 버리고 어리석은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누군가가 말한다면 바로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로 간절히 바라고 있다. 작은 것이라도, 하찮아보이는 일이라도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대학생인 지금은 적은 돈을 기부하거나, 가끔 봉사활동을 하는 등 작은 일밖에 할 수 없지만, 교사가 된 후에는 정기적으로 후원도 하고, 시간이 날 때 봉사활동도 하고, 일상에서도 누군가가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 나서서 도움을 주는 삶을 살 것이다. 또한 다른 어리석은 사람이 어려움을 보아넘기지 못하고 나선다면 그에 동조하여 다른 사람들이 함께 동조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조금은 속더라도, 가끔은 힘들더라도 죽기 전 돌이켜 보았을 때 누군가가 나에게 도움을 받아 감사하고, 어쩌면 다른 사람을 돕는 사람이 되어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는 삶을 살고 싶다.
모든 교사는 각자 어떤 교사가 되고 싶은지, 교사가 되어서 학생을 어떻게 가르치고 대할지 각자의 비전이 있을 것이다. 나는 학생들이 다른 사람을 돕는 착한 사람을 어리석다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되도록 하고 싶다. 이를 위해서 학생 개개인이 남을 돕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지도하고, 다른 사람을 돕고 있는 모습을 보았을 때 함께 도울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지도하려 한다.
먼저 학생 개개인이 남을 돕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지도하는 것은 남을 돕는 사람을 기르고 싶어하는 나의 비전에 맞는 당연한 교육 방식이다. 시작은 학생의 주변에서 하여 교실에서, 혹은 가정에서 친구 혹은 가족을 돕고 칭찬을 받을 수 있도록 하여 그 행위가 가치있는 행위라는 생각을 학생들이 스스로 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그 이후 우리 사회, 국가, 세계의 여러 문제들을 접할 수 있게 하여 세상에는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많고 우리는 다른 사람을 도울 수도, 도움을 받을 수도 있는 존재라는 것을 느끼게 하여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지도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교사로서 다른 사람을 돕는 삶을 먼저 살아가고 있는 사람의 삶을 보여주어 학생들이 착하게 사는 삶, 남을 돕는 삶이 바보 같은 삶이 아닌 층분히 멋진 삶이라는 생각을 갖고 행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함께 도울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지도하는 것은 학생 각각이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도록 하는데 꼭 필요하다. 다른 사람을 돕는 일은 혼자서도 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존재한다. 혼자 다른 사람을 도왔을 때 오히려 트래버처럼 위험해지거나, 문제가 생기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우리 사회에서 누군가가 위험에 처했을 때, 혼자서 돕기 어렵다면 다수가 나서서 문제를 극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어야 한다. 한 명의 착한 사람은 나쁜 사람에게 우습게 보일 수 있지만, 수많은 착한 사람은 충분한 위압감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느껴, 부당한 일이나 올바르지 않은 일이 있을 때 함께 행동한다면 더 많은 사람을 도울 수 있다는 사실과 더불어 내가 다른 사람을 돕고 있을 때 함께 도와줄 사람이 교실에 더 나아가 사회에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도록 하고 싶다.
수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이 사회에서 내가 교사로서 만날 수 있는 아이들의 수는 매우 적다. 그러나 정말 트래버처럼, 실습에서 보았던 아이들처럼, 만나는 사람들에게 착하게 사는 것,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사는 것이 행복한 일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사람들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나도 이런 좋은 사람들 중 하나가 되어 학교에서 만나는 아이들이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돕는 교사가 되고 싶다. 만일 내가 교사가 되어 만난 아이들 중 한 사람이라도 다른 사람을 돕는 사람이 된다면, 어쩌면 이런 작은 선행들이 모여 사회에 착한 사람들이 바보 취급을 당하지 않고 좋은 사람, 올바른 사람으로 불릴 날이 오지 않을까. 이런 원대한 꿈에 한 발짝 더 나아가기 위해 나는 현재 학생으로서, 미래에 교사로서 끊임없이 노력할 것이다.